전통 책거리, 기억의 풍경이 되다… 정필연 작가 8번째 개인전

이지예 기자

leessm7@gmail.com | 2026-05-29 22:48:25

전통 민화 책가도의 조형 언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온 정필연 작가가 여덟 번째 개인전 <겹으로 쌓여진 기억의 공간>을 개최한다.

▲ 정필연 작가 초대전 <겹으로 쌓여진 기억의 공간> 포스터 

 

오는 5월 30일부터 6월 12일까지 경기 포천시 갤러리 향원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책거리에 담긴 상징과 정신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내며, 기억과 시간, 그리고 인간 내면의 감정을 탐색하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정필연 작가는 오랜 시간 책거리와 책가도를 연구하며 전통 민화의 현대적 확장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그의 작품은 전통 양식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책과 문방사우, 기물 등 책거리의 상징 요소를 바탕으로 하되, 이를 과감히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각과 정서를 담아낸다.

 

조선 후기 정조가 사랑했던 책가도는 학문 숭상과 입신양명의 염원을 상징하는 그림이었다. 왕실에서 시작된 책가도는 사대부를 거쳐 민간으로 확산되며 자손의 출세와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는 생활 속 그림으로 자리 잡았다. 정필연 작가는 이러한 전통적 의미를 계승하면서도 책거리를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적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들은 책거리의 구조를 현대적 조형 언어로 변환한 결과물들이다. 화면은 기하학적으로 분할되고, 반복되는 선과 면은 리듬을 만들어낸다. 강렬한 색채는 기억의 단편들을 환기시키고, 절제된 여백은 관람자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머물게 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대표작 <햇살이 바다를 읽는 시간>과 <시선의 숲>에서는 전통 책거리의 형태가 추상적 색면과 선의 구성으로 변화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들은 책장의 구조를 연상시키면서도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층위를 상징하며, 반복과 변주의 리듬 속에서 새로운 감각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필연 작가의 신작 <햇살이 바다를 읽는 시간>, <시선의 숨>과 작가노트 

 

정필연 작가는 전시 노트를 통해 "전통 형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감각과 구조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어 "반복되는 문양과 강렬한 색면, 그리고 비워진 공간들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이 교차하는 하나의 추상적 풍경이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작가는 작업 속 여백에 대해 "단순한 비어 있음이 아니라 지워진 기억이자 아직 쓰이지 않은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작품에서 여백은 결핍이 아니라 관람자의 기억과 감정이 머무는 또 하나의 서사 공간이 된다.


갤러리 향원재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책가도가 지녔던 학문과 염원의 정신을 현대인의 삶과 감정의 언어로 확장한 자리"라며 "전통 민화가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시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전시"라고 전했다.


한국민화협회와 충북민미협, 현대민화진흥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정필연 작가는 개인전 8회를 비롯해 국내외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최근에는 중국 상하이 한국문화원 특별전과 브라질 한국문화원 전시에 참여하는 등 한국 민화의 현대적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과 현대, 기억과 감정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사유의 공간. 정필연 작가의 이번 전시는 책거리라는 오래된 시각 언어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뉴스다컴 = 이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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