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보호 대상이다. 그러나 무례는 제지 대상이다” 고령화 사회, 존중과 권력의 경계에 대하여
이지예 기자
leessm7@gmail.com | 2025-12-23 18:29:00
요양 현장에서 일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최근 불편한 경험을 했다. 치매 진단을 받은 고령의 남성 어르신 댁을 방문하던 중, 어르신이 젊은 여성에게 “여자는 잇몸 보이게 웃으면 안 된다”는 말을 건넨 것이다.
조언처럼 포장된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개인의 태도와 외모를 평가하고 통제하려는 인식이 담겨 있었다.
해당 발언은 현장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상처를 남기는 유형의 언행이다.
비슷한 시기, 한 언론 보도도 주목을 받았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암투병 환자가 한 어르신으로부터 “왜 일어나지 않느냐”는 호통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질병과 고통은 고려되지 않았고, ‘나이’만이 판단 기준이 되었다.
이 두 사례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존중은 나이에 따라 자동으로 부여되는 권리가 아니다. 존중은 관계 속에서, 태도 속에서 만들어진다.
어른다움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태도,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절제, 그리고 약자에게 힘을 행사하지 않는 자기 통제에서 드러난다.
최근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편함은 노인에 대한 존중의 거부가 아니라, 무례에 대한 거부에 가깝다.
현장에서는 종종 “그냥 참고 넘기자”는 선택이 반복된다. 그러나 침묵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무례한 언행은 제지되지 않을수록 강화되고, 결국 품위 있는 다수의 어르신들까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제지는 공격이 아니다. 제지는 사회적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이제 한국 사회는 다음의 문장을 함께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은 보호 대상이다.
그러나 무례는 제지 대상이다.
두 문장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할 때 사회는 더 건강해진다.
요양 현장과 공공공간에서 무례한 언행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대응 지침이 필요하며, 노인 인권 교육 또한 권리 중심을 넘어 존중을 주고받는 방식까지 포함해야 한다.
보호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보호가 누군가의 침묵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 뉴스다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